[테크월드뉴스=이재민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LG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월 10일(현지 시각) ITC는 SK이노베이션 전기차용 배터리에 대해 미국에서의 생산과 수입을 10년 간 금지한다고 최종 판결했다. 따라서 SK이노베이션은 리튬이온 배터리, 배터리 셀, 배터리 모듈, 배터리 팩과 구성 요소 등을 미국에 10년 간 수출할 수 없다. 다만 포드와 폭스바겐 자동차용 배터리는 각각 4년, 2년 간 수출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뒀다.

갈등의 시작과 과정
1995년부터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은 리튬이온배터리의 연구와 개발을 시작해 1999년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리튬이온배터리를 양산했다. 2001년에는 미국 트로이에 기술센터를 설립하고, 2012년 미국 미시간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는 등 배터리업계에서 선발주자로 앞서 나갔다.

SK이노베이션(당시 SK)은 1996년부터 리튬이온배터리 연구를 시작해 2006년 중대형 리튬이온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 서산부터 중국, 헝가리, 최근에는 미국 조지아까지 계속 공장을 증설하는 등 배터리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이어 왔다.

2017~2018년 동안 LG에너지솔루션 전지사업본부 직원 100여 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이직했다. LG 측은 이직 과정에서 입사 지원 서류에 전기차 배터리 관련 프로젝트 경험, 핵심 공정 기술 등을 적도록 해 주요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직한 직원들이 LG 회사 시스템에서 개인당 400~1900여 건의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한 정황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이 2019년 4월 29일 ITC와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하면서 본격적인 소송전이 시작됐다.

SK이노베이션은 “경력직 채용은 공식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며 “어떤 핵심 기술이 유출돼 LG에너지솔루션이 피해를 입었는지 밝히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9년 9월 ITC와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LG에너지솔루션을 전기차 배터리(모듈, 파우치) 특허 침해로 제소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바로 다른 특허 건(분리막, 양극재) 침해 맞소송을 제기했고, 산업기술 유출방지 보호법 위반 혐의로 SK이노베이션과 인사담당 직원 등을 서울지방경찰청에 형사고소했다.

2020년 2월 ITC는 중간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를 결정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요청한 SK이노베이션 서버에 대한 증거개시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혐의가 드러나 패소 판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정기보안점검때문에 문서를 삭제한 것으로 영업비밀 침해와는 상관없다며 불복했다. ITC의 최종 판결은 지난해 2020년 10월 5일 내려질 예정이었으나 이후 10월 26일, 12월 10일, 2021년 2월 10일로 총 3차례 연기됐다.

소송 과정에서 양측 간 협상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ITC의 최종 판결일이 다가올 때마다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고, 2020년 말에는 LG에너지솔루션 김종현 사장과 SK이노베이션 김준 사장이 협상을 위해 두 차례 만나기도 했다. 2021년 1월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중재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양측 모두 “원만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만 밝힐 뿐 합의금 수준에 대한 입장이 크게 엇갈리면서 협상은 타결되지 못했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가 최종 판결로 이어졌다. ITC 최종판결은 60일 이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가로 오는 4월 10일(미국 시각) 효력이 발생한다.

LG는 왜 ITC에 제소했나?
기업 간 소송은 절차가 더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해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보통 3년이 걸린다. 그러나, ITC는 대통령실 직속 준사법적 독립기관이라 12~15개월 이내에 판결이 나온다. 또한 디스커버리 제도(재판 시작 전 양측이 증거 서류를 모두 공개하는 것)가 있어 강력한 증거조사가 가능하다. 이 제도는 LG에너지솔루션이 ITC에 제소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ITC는 대통령실 소속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판결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판결 60일 이내 행사 가능)을 가진다. 2013년 6월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권 소송에서 ITC는 삼성의 손을 들어줬으나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국 이익을 고려해 판결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있다.

 

예상되는 경우의 수
앞으로 예상되는 경우의 수는 크게 3가지다.

①바이든 대통령이 최종 판결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
이 경우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다. 바이든 대통령이 친환경 분야에 2조 달러를 투입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고, 관공서 차량을 모두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약 3조원을 투자해 연간 43만 대 분량(21.5GWh)의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가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접게 된다면 미국도 그만큼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 실제로 브라이언 켐프 미국 조지아주 주지사는 ITC 최종 판결로 SK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ITC 최종 판결은 효력을 잃고, 양측 간 배터리 소송은 델라웨어 연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민사 소송에서 결론이 난다.

②바이든 대통령이 최종 판결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
바이든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입장이다. 최근 바이든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지식재산권 침해와 기술 이전 강요 등을 문제 삼았다. 이런 상황에서 SK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는 건 어렵다는 의견이다. 바이든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ITC 최종 판결의 효력이 발생하면 SK이노베이션은 연방고등법원에 항소할 것이다. 항소를 하더라도 수입금지 조치 등은 그대로 유지돼 항소 기간 동안 SK는 이런 손해를 그대로 안고 가야 한다. 만약 항소에서 패소한다면 LG와의 협상에서 더욱 불리해진다.

③최종 판결 효력 전 양측이 조기 합의하는 경우
ITC 최종 판결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양측이 합의하면 판결은 무효가 된다. 조기 합의는 배상금이 관건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약 3조 원을 요구한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연내 상장 예정인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 지분 일부와 소송 비용 등을 포함해 6000억 원 안팎을 제시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분석대로라면 양측이 책정한 배상금 규모가 큰 차이를 보여 합의 과정이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배상금 규모가 결정되면 배상금 지급 방식이 또다른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이 가진 유동자산은 대략 1조 8000억 원이다. 배상금이 2조 원을 넘길 경우 유동자산으로는 부족해 SK가 배터리 관련 계열사 지분을 제공하는 방법 등이 거론됐다.

2월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임박해졌다. SK루브리컨츠는 세계 고급 윤활유 원료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기업이다. 매각 대상은 SK가 보유한 SK루브리컨츠 지분 100% 중 49%며 매각가는 약 2조 원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서는 SK가 LG와의 합의를 위해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배상금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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